자동차/국내이야기

타다 금지법을 보며 든 생각, 나는 왜 타다를 타는가?

오토앤모터 2019. 12. 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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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타다‘를 처음 타 본 이후로 더 이상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다. 
사실 ‘타다’가 잡히질 않아, 딱 한번 더 택시를 탄 적이 있었는데, 택시는 더 이상 타고 싶지 않다는 확신만 생겼다.  더불어 자가용을 모는 횟수도 크게 줄었다. 심지어 비용의 제약과 약간의 문제점(대기시간/호출불가)만 해결되면, 차를 처분해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더 이상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가?
이미 많은 타다 이용자들이 ‘교과서처럼’ 이야기하는 이유와 같다. 불친절하다. 더럽다. 냄새 난다. 운전이 지랄맞다. 등등.. 

택시의 지배자는 택시기사다.
택시의 경험을 떠올려 보자.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의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 택시 기사 취향의 라디오-대부분 시사 토크, 교통방송이 틀어져 있다. 멀미를 유발하는 특유의 택시 냄새는 약90%의 택시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다. 시시때때로는, 말하고 싶지 않은데 택시 기사 아저씨가 말을 걸면 맞장구 쳐는 사회성도 발휘해야 한다.
승객을 위하는 운전이 아닌 택시 운전 기사 본인 위주의 운전은 말할 것도 없다. 택시 기사의 경력, 성향, 그날의 기분, 스케줄, 교통 상황이 운전에 그대로 반영된다.

운전이 지랄맞다고 느끼는 건 승객으로 탈 때도 마찬가지지만, 도로를 함께 쓰는 운전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승객을 태우거나 내리기 위해 느닷없이 끼어들고 급정거하거나, 차선을 물고 달린다. 길가에 정차해 차선 하나를 못쓰게 만드는 행위들은 택시의 ‘전매특허’처럼 되어 버렸다. 과거엔 ‘생계형’이니 이해해줘야 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최근엔 택시가 파업할 때 나아진 도로환경을 기대하며 택시 파업을 반기는 것이 인터넷 여론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한마디로 택시는 꼭 남의 차를 얻어 타고 이동하는 기분이다. 편치 않다. 맞다. 택시의 주인은 택시기사니까 당연한 얘기인가?

사진출처: 타다 홈페이지

택시와 타다의 차이는 뭘까?
그런데, 이 점이 ‘타다’와 택시의 큰 차이를 가져다 준다. 이동한다는 것 외에는 전혀 다른 서비스를 보여주는 것이 택시와 ‘타다’다. 서비스의 ‘고급과 저급’의 수준 차이가 아니다. 서비스의 태생과 목적, 개념 자체가 다르다.

‘타다’를 타면,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들은 택시와 정반대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 감정의 차이를 주는 것은 서비스의 기준이 나이기 때문이다.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또한 고객DB가 좀더 쌓이면, 해당 고객의 취향을 반영한 커스터마이징도 이뤄질 수 있겠다.)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기사가 나에게 묻는다. 음악은 괜찮은 지, 실내온도는 적절한 지. 불편한 건 없는 지. 내가 중심이니까 내 의향을 묻고 맞춘다. 공기 정화기는 물론 스마트 기기를 충전할 포트도 준비되어 있다. 사실 온도 조절 스위치도 차의 특성상 후방에 있어 기사에게 번거롭게 얘기하지 않고 조절하면 된다.

내 위주라는 것은 ’고객이 왕이다’의 개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고객이 없다. 내가 지배하는 공간에, 나 대신 운전을 대리하는 누군가가 있을 뿐이다.

운전 역시 내 위주다. 나의 ‘안전’과 ‘안정’이 먼저다. 가끔은 답답할 정도로 안전하게 정석대로 운전한다. (요새 가끔 안 그런 기사들도 있지만, 그래도 그 수준이 택시 평균 이상이다.) ‘서울 시내에서 이렇게 운전하면 암 걸릴 거 같은데…’ 수준으로 끼어들기도 신사적으로 한다. 여담이지만, ‘타다’를 승객으로 탔을 때의 좋은 경험 덕에, 운전자로 도로 위에서 ‘타다’를 만났을 때 우호적으로 대한다. 잘 끼워주고, 초보운전처럼 배려해 준다는 뜻이다. 이것도 택시와 반대다.

카니발 특성상 자동문도 한 몫 한다. 열고 내림도 없이 문이 자동으로 열리면 목적지로 이동해 있다. 이동하면서 휴식과 재정비를 취할 수 있는 온전한 내 공간에서 충분히 쉬다 나가는 기분이다.
11인승 대형 미니밴 ‘카니발’이 ‘타다’의 영업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는 몰라도, ‘이동하는 나의 공간’이라는 차별성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시 말하지만, ‘타다’에 있어서 운전기사의 존재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혹여, 미래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된다면, ‘타다’에 도입되어도 거부감이 없을 정도다. 정말 나의 이동공간에 나 대신 운전하는 보조적인 개념의 존재일 뿐이다.

정리하자면, 택시가 남의 이동수단을 빌려 타고 이동하는 서비스라면, 타다는 ‘이동하는 나의 공간’이란 다른 개념의 서비스라고 할 수 있겠다.

말장난이 아니냐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서비스’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 크게 보면 같은 서비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서비스가 소비자 편의와 혁신에 의해 차별화,세분화되고 고도화되기 마련이다.
백화점과 대형몰, 대형마트와 전통시장도 물건 파는 것은 같지만 각각 특성은 다르다. ‘리조트’와 ‘호텔’도 ‘민박’과 ‘펜션’등도 숙박업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고객층과 서비스 성격, 추구하는 내용, 가치들이 다르다.

사진출처: 타다 홈페이지



타다가 혁신일까?
혹자는 ‘타다’가 혁신이냐고도 반문한다. 앱으로 부른다는 것 외에 다른 점이 뭐가 있느냐고.
‘혁신적인 서비스’는 누가 판단하는가. 정부가? 아니면 학계의 기준이 있을까?
혁신이냐 아니냐는 사실 소비자가 제일 먼저 반응하고 소비자에 반응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편익을 느끼는 만큼 소비자는 빠르게 증가하기 마련이다. 페이 결제, 인터넷 은행, 로켓 배송, 공유차와 같은 서비스는 그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편익이 워낙 커서 폭발적으로 사용자가 늘었던 서비스였고,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택시 산업이 가야할 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사실 ‘타다’가 ‘혁신’이 아니라면, 그깟 앱 하나의 문제라면, 택시 업계가 일심 단결하여 앱 하나 만들면 된다. 보다 많은 차량, 보다 많은 기사가 전국 규모로 깔려 있다. 이미 깔려 있는 압도적인 인프라를 기본으로 ‘타다’와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압도적인 점유율로 시장을 장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택시업계의 ‘혁신적’인 변화 없이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임을 안다. 미래의 변화의 폭이 가장 큰 분야가 이동수단(모빌리티)임에도, 택시 서비스는 1970년대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멈춰 서 있다.
떠올려 보라. 소비자 입장에서 너무나 당연한 카드결제 시스템을 택시에 갖춘 것도, 또 눈치보지 않고 쓸 수 있게 된 것도 여러 진통을 겪고 난 후 근래의 일이다(!)

그럼에도 변화 없이 도태되는 산업을 개선하고 변화에 흐름에 맞춰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 보다는, 튀고 선도하는 산업을 되려 뒤로 물려 하향 평준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안에 기가 막혔다.
소비자 입장에서 바라볼 때 개선이 필요한 것은 ‘타다’가 아니라, 전통적인 ‘택시’산업이다. '타다 금지법'은 말 그대로 정부가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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