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랭글러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나쁜 남자’다.
예를 들어 보자. 여기 평생 모범생으로 살아온 남자가 있다. 그가 한번 일탈행동을 하게 되면, 치명적이고 그것이 흠이 되기 쉽다. “쟤 왜 저래?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다.”와 같은 반응일 것이다.
나쁜 남자의 경우를 들어보자. 그의 일탈이야 일상이고, 그것이 그의 매력이다. 나쁜 그가 어느 날 의외의 배려심을 딱 한번 보여준다면, 딱 한번의 사소한 행동임에도 감동까지 불러 일으킨다.
지프 랭글러를 타면서 ‘나쁜 남자’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탈 때도 내릴 때도 불친절하다. 승차 내내 거친 소음과 진동은 대중 자동차의 덕목인 안락함이 아니라, 불편함을 선사한다. 실내 옵션도 마감도 굉장히 투박해 보인다.
분명 일반적인 기준으로 형편없는 차 같은데, 신기하게도 뭔가 끌리는 강력한 매력이 있다.
오늘 지프 랭글러의 ‘나쁜 남자’와도 같은 매력에 대해 알아보자.
외관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주력 전투 차량 G-5. 독일군은 G-5의 탁월한 기동성을 바탕으로 연합군을 괴롭혔다. 이후 이 차량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G바겐으로 발전한다.
미 국방성이 G-5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최초의 양산 지프모델인 ‘MB’다. 3명이상의 군인이 탈 수 있고, 소형에 경량이며, 다목적으로 활용 가능하며, 전장을 마음껏 누빌 수 있는 4륜 구동형 자동차. 2차 세계 대전뿐 아니라, 한국 전쟁 등 과거 전쟁 영화를 보면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바로 그 차다. 그리고 MB의 전통을 이어온 것이 바로 지프 랭글러.
지프 랭글러가 우리들에게 익숙한 보이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이미지,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강력함, 마초적이고 강한 남성적인 이미지는 지프 랭글러가 과거 전장과 전후 건설현장을 누비던 MB로부터 DNA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지프의 모양을 하고 있는 지프 랭글러는 당연히 매력적이다. 시승한 차량은 5인승 지프랭글러 루비콘. 다른 SUV가 오프로드에 온로드 성능을 더하다 못해, 온로드가 중심이 된 반면, 지프 랭글러 루비콘의 경우, 한치의 타협의 여지도 없이 오프로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남들이 YES를 외칠 때, NO!를 외칠 수 있는 단호함. 더욱 매력적이다.
내관
인테리어를 살펴보면 투박하고 왜이런가 싶다. 센터페시아의 LCD모니터를 위시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만 없다고 치면, 마치 2000년대 초 차량의 분위기다.
하지만, 이 또한 오프로드에 충실해 있다는 지프 랭글러 루비콘임을 감안한다면,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다. 오프로드의 극악한 환경에서 생길 수 있는 차량 파손이나, 고장 등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또 혹시 파손 시에도 쉽게 수리나 임시 처치가 가능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셈이다. 물, 습기, 온도, 먼지 등 극한의 환경에 약한 전자장비를 최대한 배제한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심미적 디자인이나 편의성 보다, 오프로드에 있어서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을 우선시 한 사례는 실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도어의 마감이라든지, 창문 열고 닫는 윈도우 버튼이 센터페시아 배치된 것이 좋은 예다. 오프로드 시, 도어를 탈거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이 차는 간단한 공구로 처리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 미적 디자인이 아닌 기능적인 디자인과 설계가 이뤄진 셈이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5인이 앉을 수 있는 오픈카라는 점. 시승한 오픈카 중 5인승은 최초가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중. 소형 세단을 베이스로 한 컨버터블의 경우, 중간에 헤드레스트나 안전띠가 없는 4인승이 대부분이다.
지프 랭글러 루비콘의 하드탑의 이름은 ‘프리덤(Freedom)’. 그런데 그 이름이 무색하게 탈착은 쉽지 않다. 지프 랭글러 루비콘의 하드탑은 총 3피스로 이뤄져 있는데, 1열의 2피스로 이뤄진 하드탑 탈착은 그나마 쉽고, 보관도 용이한 편이다.
하지만, 2열과 트렁크를 아우르는 하드탑 부분은 탈착도 까다롭고, 보관도 마땅치 않다. 하드탑의무게도 상당해서, 매뉴얼에 따르면, 탈착를 위해 4명 정도를 추천하고 있고,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니, 엄청난 덩치의 백인 2명이 낑낑 거리며 옮기는 장면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Freedom is not free인 셈이다.
성능
오프로드 성능에 있어서 이야기할 거리는 사실 많지 않다. 이 차는 다른 SUV와 달리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아우르는 것이 아닌, 오프로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지프 외의 또 다른 SUV 명가인 랜드로버의 차량들과 비교를 하자면, 랜드로버의 차종들은 오프로드를 굉장히 쉽게, 또 마치 오프로드에 양탄자를 한두겹 깐 듯한 편안한 느낌을 준다. 반면, 지프 랭글러의 경우,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생생한 오프로드 느낌을 전달한다.
문제는 온로드에서의 일상 주행일 것이다. 일단 소음과 진동을 포함한 승차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개인적으로 ‘신형시내 버스’를 타는 듯한 기분이었다. 시내 주행에 있어서 가장 문제되는 부분은 엑셀레이터 조작이 아닐까 싶다. 오프로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엑셀레이터의 깊이가 일반 승용차의 1.5~2배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밟기에 따라 토크가 굉장히 리니어하게 전개된다.
이러한 깊은 엑셀레이터와 리니어한 토크 전개는 차의 섬세한 움직임과 조작이 필요한 바위길과 같은 오프로드 구간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도로, 특히 시내도로에서는 단점으로 다가 온다.
일반 차량처럼 엑셀을 밟으면, ‘어??? 차가 왜 이렇게 안나가?’ 내지는 ‘왜 이렇게 느려? 답답해’와 같은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물론 엑셀을 깊숙이 밟으면 그제서야 이 차의 파워를 알 수 있는데, 풀 악셀이란 것이 좀처럼 하고 싶은 일은 아니다.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시내운전에서는 엑셀레이터 조작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이지 않기 에 평소보다 많은 끼어들기를 허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며칠 타다 보니, 어느 샌가 답답함은 사라지고 대인배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본의든 아니든 간에 양보도 잘 해주게 되고, 혹여 얌체 같이 끼어드는 차량을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분노보다는 ‘쯧쯔쯔..뭘 저리 기를 쓰고 갈까? 먼저 가도 결국 몇 분 정도 차이일 텐데…허허허허’ 같은 대인배 같은 생각만 들었다.
지프 랭글러 루비콘은 목적성이 뚜렷하다. 원초적이고 순수한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에, 매력으로 다가온다. 스포티나 스포츠룩 같이 그 때 유행에 맞춰 흉내만 내거나, 내다만 것이 아니다. 정통 오프로더다. 문제는 일상 속에서 몇 가지를 포기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같다. 그리고 그 몇 가지를 포기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다.
"Jeep Korea로부터 시승차량과 주유권을 제공받았으며, 포스트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의 관여가 없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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