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컬럼

이방인으로써 부러웠던 독일 아우토반.. 이유는?

오토앤모터 2012. 2. 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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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한국에 도착해서 집으로 오던 인천공항 고속도로에서 전 조금 부아가 났습니다.

'왜 다들 모든 차선에 퍼져서 장악하고 아무 규칙도 없이 달리는 거야'

2주간 독일의 도로를 달리다 오니, 돌아온 한국의 고속도로가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비유하자면, 마치 에스컬레이터 한줄서기를 경험하다가, 두줄서기된 에스컬레이터를 맞딱뜨린 기분이었달까요? 답답함. 공공도로의 효율성을 살리지 못하고, 서로 배려하고 다른 운전자와 호흡하기보다는 자기 중심적인 운전이 만연해 있다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마 또 며칠 지나면, 저도 다시 한국의 이러한 도로 문화에 다시 젖어들며 괜찮아지겠죠. 문화가 그래서 무서운 것 같습니다.

아우토반은 '속도 무제한'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 달려보니 무제한의 주행보다도 '속도 무제한의 고속도로'가 유지될 수 있게끔 그를 뒷받침하는 자동차 문화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 아우토반에 진입했을 때의 느낌은 솔직히 좀 무서웠습니다.
지금이야 가정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자제하고 있지만, 저도 과거 한스피드(?) 했습니다. 인천공항을 주무대로 공항행 톨게이트진입 후 공항찍고 돌아와서 두장의 톨게이트의 영수증에 찍힌 시간을 재는 걸로 나름대로의 랩타임(!)을 만들기도 했고, 서울-부산을 KTX보다 빨리 주파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때는 시속200km 정도는 당연히 기본 베이스로 깔고 진짜 스피드는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걸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철없고 무모하기만 합니다. 

그런 저였음에도 불구하고, 홈그라운드가 아니었긴 하지만, 아우토반에 들어서니 처음엔 설레기보다 좀 무섭더라고요.
눈발이 날리는 도로임에도 군데군데 반짝반짝 결빙된 것이 보이는데, 하위차선임에도 불구하고 흐름에 맞춰달리다보면 평균적으로 130-150km는 기본이고, 그런 고속상황에서도 차간거리는 왜 그리 좁은 건지 추월차선이 아님에도 전조등 켜고 꽁무늬에 딱 붙어있는 차들을 보면 뭔가 부담스러움이 팍팍 느껴지면서 엑셀에 힘이 빡 들어갑니다.

 


인정 사정없이 달리고, 사정없이 똥침 놓고, 칼같이 끼어 들고...
처음에 아우토반에 받은 느낌은 딱 이거였습니다. 다들 준레이서에 거친 황야의 무법자...
'와..진짜 다들 터프하다...'하고 운전자를 보면 백발의 지긋한 할아버지이기도 아리따운 여성분이기도 하고.. 평균 독일 운전자들의 드라이빙 포텐셜이 대단하다라는 생각도 들 수 밖에 없더군요. 상대적으로 한국에서 온 이방인인 저는 위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지면서 그 속에 어떤 규칙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일단 전조등.
이거 우리나라에서도 주간전조등 정말 실시해야 됩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주간 전조등 켜기가 잘 실시되는 나라에 가서 운전해보면 확실히 주의력이 환기되고 운전하는데에 도움도 되고 주변에 놓치는 차가 없음이 느껴집니다.
낮이더라도 나무 등의 장애물에 가려있거나 혹은 무채색의 차량들이 회색빛의 도로에서 비슷한 속도로 맞춰달리다 보면 각 차량에 대한 주의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전조등이 켜있으면, 마치 그건 전자제품의 'on'버튼의 불빛과도 역할을 합니다. '아 저기 움직이고 있는 차량이 있구나'하고 무의식 중에 한번 더 제대로 인식을 하게 되죠. 특히 고속으로 달리는 아우토반에서는 서로 간의 존재파악이 매우 중요하니까, 낮에도 전조등은 필수적입니다.

 


 
둘째 추월선은 1차선이 맞습니다만, 비단 추월선뿐 아니라 모든 차선을 기준으로 고속차는 왼쪽으로, 저속차는 오른쪽으로 붙습니다. 
 
이게 어떤 효과를 불러오는가 하면, 예컨대 총4차선이라고 가정을 하면 4차선부터 차들이 채워져 나갑니다. 4>3>2>1 순으로 차들이 빼곡해 지는 거죠.  보통 4차선은 트럭들이 장악하고, 3차선은 일반차량과 추월하는 트럭들입니다. 2차선으로 가면 좀 달리는 차들이 있습니다. 1차선은 거의 비어있다가 가끔씩 쓩! 하는 굉음을 울리며 달려가는 차들이 있습니다.이게 가장 자주 접한 일반적인 풍경인데요, 도로가 굉장히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겁니다. 빨리 갈 사람은 빨리 움직이고 천천히 갈 사람은 천천히 가고, 일정한 규칙에 맞추기만 하면 서로 서로 피해를 안주는 거죠.
  반대로 우리나라 고속도로를 보면 굉장히 재밌는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차들이 떼를 이뤄 달리는 현상인데요,  차선마다 차가 촘촘이 있어서 '차가 참 많다..조금 있으면 정체 시작인가?' 싶다가도 어떻게 그 무리들만 추월을 하고나면 전방엔 차가 없이 뻥 뚫려있는 현상, 그리고 좀 달리다 보면 또 전차선을 장악하고 있는 새로운 차 무리들 혹은 차 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로 서로에서 피해를 주는 겁니다. 빨리 갈 사람은 상위차선에서 정속주행하는 차들 때문에, 정속주행하는 차들은 무리해서 추월해가는 고속차량 때문에 스트레스와 피해, 사고위험이 높아지는 거죠.

아, 합류 얘기가 나와서 갑자기 생각나는데, 아우토반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쉼터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고, 가끔 갓길에서 확장된 개념의 '잠시 쉬어가는 곳'이 있긴한데, 제가 보기엔 좀 위험해 보입니다. 차가 고장나면 모를까 졸리더라도 절대 쉬고 싶지가 않죠.
그런데 아우토반에는 휴게소 말고 'P'로 표시된 운전중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중간중간 꽤 자주 마련되어 있습니다. 체감상으로는 매 10km정도를 달릴 때마다 본 것 같은데요.정말 촘촘히 마련되어 있다는 것 외에 쉼터란 곳이 고속도로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안심하고 쉴 수 있다는 점도 매력입니다.



셋째, 끼어든다고 차선이동의 의사를 표시하면 일단 무조건 끼워줍니다.
우리나라는 잘 안 끼워주잖아요. 도심도로도 그렇지만 고속도로에서도 마찬가지죠.
예컨대 고속도로 합류구간(휴게소,인터체인지 등)에서 차가 합류를 위해 오른편에서 다가오면, 직진하던 차량은 대부분 신경 안쓰고 그냥 달립니다. 기본적인 마인드가 "여긴 내 차선이고 내가 직진중이므로, 너가 주의해서 끼어들어. 나한테 피해주지마. 난 이미 탄력 잘받아서 달리고 있으니까, 난 너 때문에 감속하는 등 내 주행상황에 어떤 변화를 주기 싫어."

혹시라도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감속할 상황이라도 되면 쌍라이트를 번쩍번쩍 날리기에 바쁩니다. '이런 씨...넌 운전을 발로 하냐'

그런데 제가 경험한 아우토반은 이런 한국의 자동차 문화와는 달랐습니다. 깜빡이 넣고 끼어들면 최대한 상황에 맞춰 감속을 하든 어쩌든 끼워줍니다. 상위차선이 비어 있으면 당연히 차선을 옮겨 쉽게 끼어들 수 있도록 미리 차선을 비워주기도 하죠.
'끼어들까,말까', '얘가 끼어드는건가,안끼어드는건가', '들어오겠다는 거야,말겠다는 거야' '비켜주는거야,안비켜주는 거야'식의 끼어드는 차량으로 인해 서로 눈치보고 재고 생각하는 주의력 낭비, 감정 낭비가 없습니다. 재고 자시고 한번 움찔하고 아니라, 규칙대로 서로 칼같이 움직이니까 훨씬 효율적입니다.
물론 당연하게도 기본적으로 황당하리만큼 저속 상황에서 뒷차 신경도 안쓰고 끼어드는 몰상식도 없었습니다. 기본교육이 잘 된겁니다. 운전면허 따기 참 힘들다고 하대요.

넷째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보통 '칼치기'라고 하죠? 빈공간을 찾아서 차선변경을 칼로 썰듯이 날카롭게 잘라가며 달린다고, 혹은 끼어드는데 있어서 공간이 거의 없음에도 아슬아슬하게 끼어든다고 그런 이름이 붙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서 얘기했듯 아우토반의 운전자들은 차간 간격이 우리나라에 비해 좀 좁게 운전을 합니다. 처음엔 빨리 가라고 일명 똥침을 놓는다고 착각할 만큼요. (때문에 사고가 한번 나면, 수십중 추돌의 대형 사고 위험도 있어 보였습니다.)
때문인지 다들 우리나라의 칼치기가 연상될만큼 빠르고 신속하게 끼어들고 빠집니다. 끼어들듯 말 듯, 혹은 차선을 한참동안이나 물면서 끼어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차선변경은 움직임이 뒷차량이나 주변차량이 애매해보이지 않게 정확하게 직설적으로, 그리고 가능한 신속하게 이뤄집니다.


아우토반을 달려보니, 좋은 차를 타고 싶은 욕심이 자연스레 마구 생기더군요. 말씀드렸다시피, 포드 피에스타를 탔는데, 어떻게 앞차가 답답해서 상위차선으로 가면 차선 비켜주기 바쁘고, 난 이미 풀악셀해서 페달은 더 밟히지도 않고 차는 굉음을 울리긴 하는데, 차는 안나가고 뒤에서 똥침놓고... 좌측에선 애타는 내마음도 모르고 쓩쓩 거리면서 차들이 지나가고...또 우리나라는 고속주행을 하다 보면 좀 경쟁적으로 전투적으로 하기 마련인데, 아우토반에선 경쟁적이라기 보다, 일단 빠르면 비켜주고 서로 배려와 관심(?)속에서 고속주행이 이뤄지다니 훨씬 안전하게 느껴졌습니다. 

더불어 '아우토반'을 통해 독일차들의 주행 특성의 기원 또한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고속에서도 안정감있게 달리고, 그러한 고속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차선변경을 하더라도 불안하지 않게끔 탄탄한 하체 특성를 기본으로 해야 하겠죠. 고속을 내기 위해 엔진 성능 뿐 아니라, 고속에서도 잘 서기 위한 브레이크 등 제반 퍼포먼스도 받쳐줘야 할 겁니다. 또 하나는 정말 다들 신나게 달려서 '와...아우토반을 달리는 사람들은 연비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신경안쓰나'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정말 다들 고속도로에만 차를 올리면 어쩜 그리 신나게 달려주시던지.. 고유가 시대에 주유비 걱정이 없어보였습니다. 어쩌면 고속에서 따로 잘나오는 연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독일차들을 시승할 때 검증해야 겠지만, 예컨대 1600cc 피에스타의 경우 5단 3000rpm에서 시속110km가 나오는데, 고 알피엠에도 불구하고 시속 90~100km으로 주행할 때보다 연비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이래저래 부러웠던 독일 아우토반의 자동차 문화였습니다. 다음엔 일반도로에서 느낀 점을 남겨보도록 할게요.<쉽고 재밌는 수입차 이야기&라이프-오토앤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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