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네비게이션, 어디까지 써봤니

오토앤모터 2022. 3. 2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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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인가 미국 시카고 모터쇼를 참관했을 때 일이다.

자동차 브랜드마다 센터패시아에 큼지막하게 자리 잡아야 할 오디오 시스템 대신 LCD 디스플레이를 달아놓은 차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보통은 시디플레이어(6장쯤은 한 번에 들어가는)가 차지하고 있어야할 자리였다. 주먹만 한 화면 옆에는 '하드 드라이브 내장!' 과 같은 스티커가 붙어 있기도 했다.

당시는 자동차 인포테인먼트시스템(인포메이션+엔터테인먼트)의 태동기였는데, 당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메인은 네비게이션이었다. 화면 옆에는 십수 개의 물리 버튼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이는 대부분 내비게이션을 조작하기 위한 버튼들이었다.

 

2008년은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태동기였다.

 

 지금이야 자동차에 내장된 내비게이션 기능은 너무 당연한 옵션 같지만, 당시엔 고급차를 중심으로 시험적으로 넣기 시작한 시기였다. 

게다가 고급차에 들어가는 옵션임에도 내비게이션 품질은 썩 좋지 않았다. 반면 외장에 거치하는 내비게이션은 다양한 회사에서 제품을 선보이고 경쟁을 거치며 높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품질과 성능을 자랑헸다. 그럼에도 자동차 브랜드들은 굳이 왜 내장 네비게이션을 추진했을까 생각한다면, 만일 자동차 회사들이 그때 외장 내비게이션으로 만족했다면 현재의 자율주행차 개발 베이스는 없었겠지요.   

 내비게이션이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전에는 해외에서 렌터카를 빌릴 때면, 사전 준비 기간이 꽤나 필요했다. 2010년 유럽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났을 때도 그랬다. 프랑스 파리로 들어가서 스위스 취리히로 나오는 일정이었다. 주요 경로의 볼만한 곳들을 찾고, 가능하면 원형을 그릴 수 있는 루트로(효율적이니까), 하루 운전거리는 300km 정도로 지도를 펼치고 예쁘게 연결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린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교보문고 광화문점 같은 큰 서점에 가면, 유럽 드라이빙 지도책을 따로 팔았다. 두께도 상당히 두툼해서 필요한 부분을 찾아 펼쳐보고, 중요 도로를 따라 형광펜을 칠한다. 여기서 구글 맵에 들어가 조금 애매한 지역이나 복잡한 지역은 미리 위성지도로 확인하고 이미지트레이닝을 했다.
MZ 이하 세대라면 "그냥 구글 맵 켜고 다니면 되지 않아요?" 하고 물을 것 같다. 리얼타임으로 자기 위치가 지도에 뿌려지고, 계속해서 위치가 보정되어 경로를 안내해 주는 기능은 이 후에 실현되었다.

 

2010년 유럽여행에서의 자동차 네비는 쓰려면 불편하고, 안써도 불편한 계륵 같은 존재였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지도를 기반으로 한 내비게이션(구글맵, 애플 맵,티맵 등) 기능은 해외여행에서 직접 운전을 하지 않더라도 쓸모가 있다. 두바이에서 드라이빙 행사가 있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나에게 아랍은 신밧드의 모험 같은 책에서나 접한 게 다였던, 생소한 문화권이었다. 정말로 양탄자가 날아다닐 것만 같은 신비한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숨을 고르고 셔터를 눌렀는데, 뷰 파인더에 ‘NO CARD’라는 메시지가 떴다.

 

어이가 없네. 군인이 총에 총알이 없다는 거지. 메모리카드도 사고 가까운 두바이몰을 구경도 갈 겸 호텔에 부탁해 택시를 잡았다. 갈 때는 호텔에서 잡아준 택시니까 괜찮았는데, 돌아올 때가 문제였다. '가만있어 보자. 두바이에서는 아무 택시나 타도 안전한 건가?' 잠깐 고민은 했지만, 시차 부적응의 피로한 나의 몸은 이미 택시 안에 담겨 찰랑이고 있었다.

 

 택시 기사도 나도 서로 잘되지 않는 영어로 목적지를 이야기를 했는데,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저 택시 기사는 영화 테이큰의 악당과 참 닮았다. 반곱슬의 검은 머리,룸미러로 비치는 깊은 쌍커풀의 날카로운 눈매하며 면도를 언제 했는지 목과 코와 입 주변으로 거칠게 자란 수염에 눈 두개,코 하나,입 하나까지.귀도 두개네. 스멀스멀 불안함이 몰려오는 순간 스마트폰의 애플 맵을 열어 경로를 확인해 본다. 방향은 맞는데, 이 길로 가면 돌아가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나는 마치 이 곳을 잘 아는 길인 양 "기사 양반, 이 길이 맞습니까?" 스마트폰을 흔들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비게이션에 비친 두바이의 인공섬 팜 주메이라의 모습

 

내장과 외장의 경계를 허무는, 외장(스마트폰)이 곧 내장 네비게이션이 되는 애플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오토는 과거에 비하면 혁신적이다.  목적지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놓고, 차량 내 USB 케이블에 턱 꽂으면 자동차 화면에 뿌려주니 정말 편하다. 가장 최근인 2019년의 자동차 여행 때에는 준비할 것이 거의 없었다. 데이터로밍이나 해외 SIM 카드만 신경 써서 스마트폰만 '온라인'상태를 유지하면 된다. 출발하기 직전에 스마트폰 지도에 목적지의 이름만 입력하면 현지인만큼 똑똑한 길로 안내된다. 최근에는 케이블로도 연결할 필요 없이 블루투스로 무선 연결이 되는 차량도 나왔다.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아도 연결이 되니까 상당히 편리하다. 무선 연결이 불편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특히 전화 통화할 때 프라이버시랄까. 오는 문자들도 차량 화면에 족족 뿌려주니까 동승자와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구조다. 유선 연결은 애초 차와 케이블 연결을 안 하면 되니까 이상하지 않은데, 무선의 경우 애써 연결을 끊는 것이 되니까..."뭐 나한테 숨기는 거 있나요?"

 

내외장 네비게이션의 경계를 허문 애플 카플레이. 미국 기업이기 때문일까. 국내 출시 브랜드 중에는 쉐보레가 애플 카플레이, 구글 안드로이드오토의 적용이 빨랐다.

 

어쨌거나, 미래에는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이 어디까지 발전해 있을까 상상해 보게 된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내비게이션이 알아서 최신 핫플레이스 위주로 여행 경로와 계획을 짜놓고 “빼고 싶은 건 빼세요.”라고 제안할 수 도 있겠다 싶다. 아니면 “오늘의 테마는 햄버거입니다. 아침은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 점심은 인 앤 아웃버거, 저녁은 파이브 가이즈로 모시겠습니다. 주인님, 햄버거 먹방 가즈아." 같은 일도 곧 일어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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