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컬럼

재미있는 포르쉐 이야기

오토앤모터 2008. 4. 14.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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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이었다. 어둑어둑해진 한적한 여의도 대로변을 가로등에 의지하며 걷고 있을 때, 중저음의 알맹이 꽉 찬 자동차 배기음 소리가 적막한 여의도의 밤하늘을 갈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차가운 빛깔의 은색 오픈카가 신호대기에 걸려 도로에 서 있었다. 잘 빠진 몸매에 작고 낮은 차체까지… 그것은 포르쉐 박스터S였다. 포르쉐! 자동차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포르쉐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설렌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드림카(Dream Car)로 꿈꾸는 차 중의 하나이고, 그래서 포르쉐에서도 차가 아닌 꿈을 판다고도 이야기 할 정도이다.


포르쉐는 페라리와 함께 스포츠카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브랜드이자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그 성격과 추구하는 방향은 두 브랜드가 조금 다르다. 스포츠카라는 개념에 대해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요즘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자동차의 경제성이나 혹은 안락함, 편안한 승차감과는 거리가 먼 것은 확실하다. 편안한 승차감보다는 달리기 좋은 단단하고 낮은 차체, 빠르게 달리기 위해 공기저항을 최대한 덜 받을 수 있도록 고안된 디자인에, 최대한의 성능을 끌어내기 위한 강력한 엔진과 파워는 기본이다. 이러한 퍼포먼스의 실현을 위해 운전자는 딱딱한 시트, 다소 돌리기 어려운 뻑뻑한 핸들에 대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클러치, 악셀, 브레이크 등의 조작 또한 일반 차량과 제법 다르고 또한 힘들기까지 하다. 어디 그 뿐인가? 낮은 차체로 인해 도심에서는 요철이 심하지는 않은 지 급경사의 언덕 구간은 없는지 등의 노면의 상태 또한 고려하여 주행해야 한다. 연비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최대한의 성능을 끌어내기 위해 연비는 두 번째 아니 차차차선의 밀려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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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11 터보 카브리올레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정통 스포츠카들은 일반 운전자 그리고 그들의 일반적인 운전 상황과는 거리가 멀고 그렇기에 동경의 대상으로 남겨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포르쉐는 다르다. 여전히 세컨드카 개념이 강하지만, 포르쉐는 스포츠카이면서도 데일리카(Daily car)로 일상 생활에 사용하는 데에도 불편함이 없다. 그것이 포르쉐의 매력이고 강점이다. 많은 운전자들이 가진 잘빠진 스포츠카의 로망을 포르쉐는 현실적으로 해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포르쉐 노트(Porsche Note)에 대한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운전자는 핸들과 엑셀 그리고 브레이크라는 접촉점을 통해 드라이브를 즐기는 동안 끊임없이 자동차와 교감하게 된다. 자동차는 운전자의 손과 발놀림에 즉각적으로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반응하고 그 상황을 운전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운전자와 하나가 되어 호흡한다. 운전자는 드라이브를 즐기는 동안만큼은 마치 남보다 강한 심장과 무쇠팔, 무쇠다리를 가진 듯한 기분이다. 따라서 스포츠카에는 강력한 성능을 위한 기술 외에도 운전자의 시각, 촉각, 청각 등을 통해 운전자의 감성적 측면을 고려하는 기술 또한 중요하다. 포르쉐에는 포르쉐만의 특유의 엔진음이 있는데, 이를 포르쉐 노트(Porsche Note)라고 부른다. 노트(Note: 음표,악보)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엔진음이나 배기음을 단순한 소음에서 승화시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요소로 창조해낸 것이다. 낮게 깔리면서 속이 꽉 찬 포르쉐의 노트의 매력에 한번 중독되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뜻에서 이를 포르쉐 바이러스(Porsche virus)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스포츠카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 포르쉐는 자동차 천재이자 자동차 역사상 최고의 엔지니어로 불리는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박사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포르쉐의 역사에 있어서 이 포르쉐 박사를 빼 놓을 수 없다. 1875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난 포르쉐 박사는 작은 전기 기계 제작소에서 조수로 시작하여 다임러 벤츠사에서 자동차 설계, 비행기 엔진 제작 등에 참여하며 실력을 쌓아나간다. 이러한 기술과 노하우들은 그의 천재적인 능력을 통해 최고의 자동차 모델들로 선보이게 되는데, 실제로 그가 설계한 자동차들은 여러 자동차 경주 대회를 통해 우승을 하였으며, 포르쉐 박사는 단순히 설계자, 엔지니어의 자리에 그치지 않고 직접 차를 몰고 레이싱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컵까지 거머쥐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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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


하지만, 경영진과의 불화로 끝내 회사를 떠나 독일의 슈트트가르트에 포르쉐의 전신인 포르쉐 박사 자동차/엔진 개발 연구소를 설립하게 된다. 그가 처음으로 맡게 된 프로젝트가 바로 국민을 위한 소형차 Volkswagen(국민차) 개발이었다. 전쟁광이자 극우 민족주의자였던 히틀러는 포르쉐 박사에게 까다로운 개발 조건-기름 7리터로 100km를 달릴 수 있고, 어른 2명과 아이들 3명을 태울 수 있는 실내, 정비도 쉽고, 엔진도 얼지 않는 게다가 가격까지 싸야 한다-을 걸고 국민차 개발을 지시하였고, 그로부터 3년 후 포르쉐 박사는 베를린 올림픽이 열리던 1936년,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국민차를 공개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딱정벌레 차로 유명한 비틀(Beatle)로, 비틀은 이후 30년 동안 동일한 모양으로 전세계에 팔리며 역사적인 베스트셀러 모델에 오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1948년 포르쉐 박사의 아들인 ‘페리 포르쉐’가 비틀의 섀시와 엔진 등을 바탕으로 RR방식(뒷바퀴 굴림, 후미 엔진)의 스포츠카를 탄생시키게 되는데 그것이 포르쉐 최초의 대량 생산 모델인 포르쉐 356이다. 이때 적용된 RR방식은 지금까지도 911 등 포르쉐의 대표 모델들에 계속 적용되어 포르쉐의 트레이드 마크로 여겨지고 있다.


이외에도 포르쉐 박사는 2차 대전 중에 수많은 자동차 및 기계 관련 기술을 개발하게 되는데, 이중 놀라운 것은 엔진으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충전하거나 전기모터를 움직이는 방식의 ‘하이브리드 구동 시스템’의 개발이었다. 현재 고유가로 각광받고 있는 미래의 기술인 하이브리드 엔진은 사실상 50년도 훨씬 이전에 포르쉐 박사에 의해 고안되었다는 사실은 포르쉐 박사를 자동차 역사상 최고의 엔지니어로 추앙 받게끔 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든 포르쉐는 이후 포르쉐 박사의 포르쉐 설립 의지에 맞게 스포츠카 브랜드로 일반 자동차 회사들과는 노선을 달리하며 사세를 확장하여 나갔고, 1990년대 초반 잠시 경영상 위기가 닥치기도 하였지만, 포르쉐 대표모델인 911의 부활, 그리고 포르쉐 매니아들의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자아낸 포르쉐 최초의 SUV 카이엔의 선전 등으로 위기를 탈출하게 된다. 매년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이뤄나가고 있는 포르쉐는 고성능 스포츠카의 대중화로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계속해서 꿈을 전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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