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타

피지에서 느낀 점들(2)

오토앤모터 2012. 7.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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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을 '2박+3박'으로? 한곳에 머무르긴 지루할까?

아이가 있다는 특수성 때문이긴 했지만, 처음엔 '한 리조트에서 5박은 너무 긴 게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2박+3박'정도로 나누어 각각 다른 리조트에 묶어볼까도 생각했었다. 이왕 간건데 다양한 경험을 해야할 것만 같은 느낌.
결국 '아이들과 이동'문제로 한 리조트에 머물기로 했는데 지나고 보니 잘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한 리조트에서 5일이 결코 길지만은 않았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비싼 돈 주고 바다 건너 해외여행 왔는데 리조트에만 머물다 가면 손해보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좋은 호텔이나 리조트를 예약하고도, 리조트 안에만 머무르는 것을 꺼리곤 한다. 어디 리조트 뿐이랴. 일단 바다를 건너가면,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것들을 보고 오는 것이 여행의 목표가 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여행사들의 유럽여행 광고를 보면 확실히 '9일 7개국' 같은 상품들이 '9일 2개국' 내지 '9일 3개국'보다 훨씬 많고 굵고 큰 글씨로 표현된다.

틀리지 않은 생각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보는 것만큼, 한곳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머물며 다양한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여행으로써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여행의 목적이 새삼 중요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도 그랬다. 최대한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편히 쉬다 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지에 도착한 첫 날, '이 좋은 곳에 와서 이렇게 퍼져 있어도 되나?'하는 알 수 없는 우려감에 어느샌가 투어데스크에 가서 일일투어를 예약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일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밴 안에서야 이번 여행의 목적-휴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게 아닌데'..하고 목적을 되새겼다. 푹 쉬면서 읽기로 한 책 4권을 들고 갔는데, 의무적으로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읽은 것이 2권 반이었다. 리조트조차 다 돌아보지도 못했다. 

그렇다. 목적에 따라 '5일'이란 시간이 다른 지역 관광은 커녕 한 곳에서 '자기만의, 가족만의 진정한 휴식'만을 취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인 셈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약탈방식이 아닐까, 관광자원의 약탈

피지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국가다. 수많은 섬으로 이뤄진 영국령인 피지는 가까이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멀리는 세계각국에서부터 '퓨어피지'를 맛보기 위해 방문하게 된다.

'우리 비행기는 앞으로 15분 후 피지 난디 공항에 도착합니다.'란 안내 멘트가 나가고 착륙 준비 중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에서 보는 피지의 모습은 정말 황홀하다. 옥빛, 하늘색, 에메랄드색, 보석빛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안되는 바다는 황홀함을 안겨준다. 도착 후의 다소 원시적인 느낌의 공항 또한 이국적이고, 내가 별세상에 왔구나 하는 청량감마저 주었다. 

 공항에서 리조트까지 1시간 동안 60여 킬로미터의 도로를 달리게 된다. 그 도로는 피지에서 가장 대표적인 도로임에도 왕복2차선에 중간중간 패여있는 비포장길도 포함이 된다. 뿐만 아니라 도로 밖의 풍경도 흑백사진으로만 보던 풍경들, 우리나라 60~70년대가 아닐까 하는 피지의 현실이 계속된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 때 쯤에서야 또다른 현실, 도로에서 풍경과는 180도 다른 화려한 리조트에 도착한다.

피지의 샹그릴라 피지언 리조트 오션윙의 앞바다는 청정의 바다다. 거의 100미터 이상에 이르는 구간이 산호초로 파도를 막아주며 그린에메랄드빛 옥색 바다가 이어진다. 굳이 스노클링을 하지 않아도, 바다에 서 있으면 바다 속의 물고기,불가사리,산호들이 눈에 보인다. 그런데 오색찬란한 산호도 눈에 띄지만 많은 수가 볼품없은 갈색빛을 띄고 있다. 여기서 알게된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은 산호가 죽어갈 때 갈색을 띈다고 했다. 뭔지 모를 씁쓸함이 생겼다.

하와이에서 스노클링을 하기 좋은 명소로 꼽히는 곳 중의 하나가 하나우마베이다. 장담컨대 피지언의 앞바다는 하나우마만보다 더 좋은 스노클링 환경을 지니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더 깨끗하고, 더 고기도 많았다. 바다 속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우마베이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교육을 받게 된다. 짧은 교육시간이지만, 교육을 통해 관광객들은 하나우마베이가 수만년에 걸쳐 만들어진 소중한 자연 유산임을 깨닫게 된다. 산호를 밟아서도 안되고, 물고기 등을 함부로 만지거나 먹이를 주는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시청각 교육은 이어진다. 즉, 하나우마베이에서 인간은 관찰자의 입장일 뿐 어떤 행위를 통해 바다에 해든 득이든 어떠한 영향을 미쳐서도 안된다는 뜻이다.그렇게 강대국 미국은 하와이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시켜나가면서도 자연으로 물려받은 환경을 보호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피지언의 앞바다는 조금씩 소모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기껏해야 노피싱 정도의 경고문이랄까. 세계로부터 수많은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돈을 내고 피지의 자연환경을 말그대로 소모해간다. 비단 샹그릴라 리조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내는 7년 전에도 피지에 왔었는데, 그때의 아름다웠던 바다 속 풍경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피지 여행을 적극 추천했다. 그런데 일일투어로 사람이 살지 않는 그래서 그 자연환경이 더욱 기대되는 TIVUA섬을 갔을 때 조금 실망했다. 바다 빛은 너무나 예쁜데, 바다 속은 아파보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노클링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지역임은 확실하다.)  

피지언 리조트의 오션윙의 앞바다는 정말 조용한 분위기라 하나우마베이에 비하면 매우 극소수의 사람들이 바다 액티비티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피지 사람들은 아직 그들의 관광자원, 자연환경이 지켜야할 소중한 유산임을, 또 그 중요성을 잘 깨닫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도 그랬으니까. 우리가 88올림픽을 개최했을 때, 뉴스에 나온 금발의 관광객이 '한국의 파아란 하늘이 뷰티풀'이라고 했다. 일광욕하는 것도 보여줬다. 그 땐 당연한 걸 왜 호들갑이냐 생각했었지만, 지나고 나서야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지금은 비가 한참이나 온 다음날에야 잠깐씩 그 파아란 하늘을 감상할 수 있고, 감탄까지 하게 된다.

그래서 든 생각은 이대로라면 수십년 뒤에는 그들이 한때 아름다운 바다를 가졌었음을 알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치 19,20세기에 식량이나 생산 자원에 대한 약탈이 이뤄진 것과 비슷하게, 21세기에는 전쟁이 아닌 합법적인 관광산업을 통해서 잘사는 나라의 사람들이 미개발국가에 대한 관광자원의 약탈, 소비가 자연스레 행하여지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부유한 자본은 원시적 아름다움을 가진 미개척지를 관광지로 개발한다. 각국에서 사람들은 환호하고 모여든다. 역설적이게도 개발된 관광지는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어간다. 모든 아름다움이 소비되어지면 사람들에게서 자연히 잊혀진다.

오버일까? 나도 오버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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